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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tory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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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신론자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혹은 가톨릭의 회계라는 개념에 심히 거부감을 느낀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상대방인데 혼자 회계하면 죄가 없어진다니? 이 무슨 편의점 삼각김밥 같은 손쉬운 해결 법인가 말이다. 사람을 죽이고 인간의 탈을 쓰고는 도저히 할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중범죄를 저질러도. 아 내가 잘못했오 라고 한마디면 된다. 물론 진심으로 회계하는 것을 이렇게 비하한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진심으로 회계 한다한들. 그 죄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이 받을 고통 만큼 클 수는 절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죄를 지은 이들이 하는 회계는 사실 아무리 어려워도 그 크기를 인정 받을 수는 없다. 

편지라는 소설을 읽고 뜬금없이 기독교와 죄의 경중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 소설의 주된 주제가 바로 죄를 어떻게 용서받는가 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의 용서도 그리고 약간의 관용도 사실 이소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두 명의 인물이 그런 역할로 등장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절대로 죄를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죄를 용서 받기 위한 가해자의 면피성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행동들도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정도의 사과로 가해자를 용서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 친 할머니를 살해한 가해자가 용서해 달라고 무릎에 피가 나도록 몇일동안 싹싹 빈다고 해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닐 것 같다. 더하여 가해자가 동일하게 고통스럽게 죽어간다고 해도 잠깐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그 슬픔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단지 교도소에 들어가고 눈물겨운 편지를 쓰는 것 만으로 가해자를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잊을 만 하면 올라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심어린 우정 이런 것들은 정말로 드물기 때문에 기사화 되는 것이다. 그게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소설이나 영화들은 그런 예외적인 상황을 많이 가정한다. 어떤 계기로 가해자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아무래도 그것은 진실이 불편할 수 도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만큼은 아름답게 미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통쾌한 부분이 있다. 주인공은 소설으 마지막까지도 맘편히 살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다. 엄청 열심히 살고 살면서 많은 것들을 본인의 죄도 아닌 가족의 죄 때문에 빼앗기고 부당한 대접을 받음에도 그렇다.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이 안타깝고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스믈스믈 올라오는 적도 없지 않지만,  끝까지 용서 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이 뭔말인가 싶겠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이 말을 피해자가 되었을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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