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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tory

행복의 기원 [서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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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이란 무엇일까?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지기 위하여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행복해 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서적/이론들이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접했던 행복관련 서적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 즉, 행복해지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지금까지 행복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접근한 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행복을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왜 인간이 행복해지려 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물론 다른 책들도 이 원인에 대해 언급하기는 하지만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당연이 가지게 되는 마음이다 정도로 설명을 하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왜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은 본적이 없다. 이 책은 바로 그 원인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행복해지려는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되는 인간의 마음을 왜? 라는 철학적 사고를 입혀 생각을 비틀어 본 책이다. 이 사고의 전환이 내게는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사물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은 철학적 사고의 기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본에 따라 많은 것들을 의심하고 명확화 하여 지금의 금자탑을 세워 놓았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가까이 있어 의심하지 않았던 행복의 원인에 대해 설명한 이 책은 내 팔꿈치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처럼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 이였다.
인간은 왜 행복해 지고 싶어 할까?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그 기원은 생존에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단지 인간 유전자를 옮기는 컨테이너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그렇다.이런 접근은 사실 심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이 사고 하고 느끼는 모든 행동과, 지금까지 이룩한 엄청난 문화적 산출물을 단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폄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뇌하고 철학하는 고차원적 행동까지도 단지 생존을 위해 하는 생물의 방어기제에 불과하다는 것이 언뜻 듣기에는 쉽게 고개를 끄떡이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수긍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인간이 인간 유전자를 후대에 계속 존속케 하기 위한 컨테이너라면 인간 유전자를 존속시키기에 필요한 행동만을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된 필요한 행동을 뇌가 아닌 다른 신체 부위가 수행할 수 있게 하려면 그 행동을 반복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 바로 그 방법이 행복감이다.
단, 행복이 특정행위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부분이 쉽게 생각하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을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은 설명이 가능하다. 동물들의 경우 특정 행위를 함에 있어 인간보다 더 본능적이다. 인간은 본능에 의지하는 부분이 동물보다 적기 때문에 행위에 대한 이유를 파악하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다. 만일 그 동물이 특정 행위를 반복적으로 한다면 그 동물은 그 행위가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밥을 먹는 행위, 배설을 하는 행위, 종족 번식을 하는 행위 모두 그 동물의 유전자를 더 효율적으로 많이 남기기 위해 행동하는 것뿐이다. 이런 행동에는 아직 인간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복잡한 행위들도 있긴 하지만, 진화론은 이 일련의 행위들이 생존을 위해 발전해 왔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증명 못해도 진화론의 전문가들은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즉, 생물의 행위 중 인간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복잡한 행위들도 궁극적으로는 생존에 필요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럼 인간을 보자.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사회를 만들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행위, 생존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런 행위들이 정말 유전자를 보존하는데 필요한 행위들일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이 모든 행동이 과연 생존을 위해 미리 프로그래밍된 행동에 불과한 것인가? 당연하게도 이 책의 대답은 YES다.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의 조상이 나타난 시점부터 현재까지를 1년으로 환산하면 실제 문명화 되어 도시를 이룬 현생인류가 나타난 시점은 12월 31일 밤 9~10시쯤이라고 한다. 지금의 문명이 인간의 실제 모습인 것 같지만 실제는 자연 속에서 동물과 경쟁하며 살아온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지금의 이 위대한 문명을 이룩한 시간은 전체의 시간에 비하면 새로운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럼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머리 속에서 지시하는 특정 행동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즉,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특정행동을 하며 지속적으로 동물과 경쟁하며 살아왔을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인간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들일 때 인간은 동물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이 뇌가 느끼는 행복감과는 별개로 생존을 위한 행동을 한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능이 많이 억제된 현재의 인류들도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마약 중독에 빠지면 이성으로는 더 이상 본능을 컨트롤 하지 못하고 그 쾌락만을 쫓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행동은 극단적인 행위에 속하겠지만,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특정행동을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에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마약/ 술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성적으로나 본능적으로나 이런 행위를 계속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로는 도저히 이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왜일까? 마약을 하거나 술을 먹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너무 강렬하여 다른 행위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계속 술을 먹고 약을 탐닉하며 그 행복을 느끼려 하는 것이다. 즉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본능도 일부 관여를 하고 이성도 일부 관여를 하지만 궁극적으로 본다면 행복감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 더 강렬하겠고 인간의 경우는 조금 덜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뇌가 느끼는 행복감과는 별개로 생존을 위한 행동을 한다는 가정은 폐기 될 수 있을 것이다. 행복감을 느껴야 해당 행동이 반복되는데 행복감 없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전자는 인간을 조종하는 것이다. 유전자가 살아남기에 더 잘 프로그래밍 된 뇌를 만들어서 이 뇌로 인간 개체를 조종하게 함으로써 생존률을 높이고 나아가 자신의 유전자를 더욱 오래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이라는 냉정한 세상 속에서 좀더 생존률이 높은 뇌를 만든 유전자 만이 더욱 많은 후손을 남겨 자신의 유전자를 지속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은 진화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만 년 동안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었던 인간의 뇌가 단지 몇 천 년 동안에 갑자기 변하지 않았을 테니 뇌가 행복감을 통해 개체를 조종하는 것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뇌에 프로그래밍된 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동물이니까. 유전자를 전하기 위한 컨테이너에 불과하니까 단지 뇌가 시키는 행복감을 쫓아 살면 맞는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진화론 속에서 역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사회를 만들었다. 뭉치면 강해지는 습성을 가진 유전자의 생존율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인간은 단독으로 생활하기 보다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농경의 시작, 도시의 발달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지금의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문명화가 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문명화가 된 이 시점에서 본다면 단지 무리를 이루고 외부의 적에 조직적으로 대응 하는 것만이 내 유전자를 후대에 많이 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전자가 이 개념을 터득해 나와 주변사람이 같이 사는 방법을 생각하고 더불어 자손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자연을 보전하는 쪽으로, 즉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유전자가 뇌를 재 프로그래밍 해주면 좋겠지만, 문명 사회의 변화는 유전자의 변화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유전자가 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유전자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이 섞였지만, 결론은 하나다.
본능에 충실하며 행복함을 쫓되, 뇌 프로그램이 노후화 되어 현재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은 이성으로 채워가며 사회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복만을 쫓는 것은 케케묵은 상자 속의 보물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이 지도는 보물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 길은 이미 다른 길들이 많이 개발되어 비효율적인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돌아가면 훨씬 안락하고 인간답게 살수 있는 길들이 많이 생겼다. 그런데 예전의 그 길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본능에만 의지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길을 가며 조금씩 편한 길을 찾아 가는 방법을 택하겠지만 본능뿐이 아니라 이성을 충분히 잘 활용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우리가 굳이 예전의 방법을 따라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을 모두 포기할 필요는 없다. 왜냐? 그 길로 가면 행복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만을 쫓기에는 당장의 행복보다 내일의 더 큰 행복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으로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행복도 조금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변화된 사회 속에서 새로운 지도 없이 살아가기 위해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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